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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암 투병 이후 1년 이성미와 한강 데이트
작성자 휴먼헬스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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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4-08-28 11: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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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마른 체구, 연예계 대표 카운슬러 그리고 세 아이의 슈퍼맘.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힘이 넘친다. 그런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유방암이란 진단이었다.

건강해 보이세요. 지난해 암 진단을 받으셨을 때 어떠셨어요?

KBS2 < 비타민 > '새해 건강 계획 제2탄 여성' 편에 50대 대표로 출연하게 됐어요. 여기저기 검진을 하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죠. 의사들이 모여 잠시 뭔가 의논하더니 저에게 다가와 조직 검사를 해보자고 말을 건네더군요. 일주일 뒤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뒤통수를 한 대 '땡' 하고 맞은 듯 멍한 느낌이었어요. 유방암이었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이 들었죠. 갑자기 막내딸 얼굴이 오버랩되는데 불현듯 겁이 나더라고요. 저도 제 딸 나이였던 13살 때 어머니와 이별했거든요. '아, 내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됐나?'란 생각도 들었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가족이나 지인들도 깜짝 놀랐겠어요.

지금까지 살며 총 12번의 수술을 했는데, 이런 사실을 아는 후배들은 저를 '오버로크 리'라고 놀리곤 했죠. 그런데 이번엔 암이다 보니 다들 숙연해지더군요. 캐나다의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큰아들은 새벽에 전화해서는 "엄마, 암이라며? 괜찮아? 확실한 거야?"라며 연신 확인하더군요. "괜찮아. 수술하면 돼"라고 하니까 말을 못 하더군요. 울음을 참고 있는 게 느껴져 더 걱정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엄마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잘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끊어버렸죠. 그리고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이것저것 챙길 때였어요. 갑자기 두 딸이 "엄마, 빨리 나와 봐. 오빠가 왔어!"라고 소리쳤죠. 엄마가 걱정돼 날아온 아들이 고맙게 느껴져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순간이었어요.

건강은 괜찮으신 거죠?

수술을 할 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빛나는 자수정 방을 보았어요.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깨보니 이미 수술은 끝나고 입원실에 옮겨져 있었죠. 통증 하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결과가 좋았어요. 아직 완치 판정을 받으려면 4년이 남아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아야 해요. 먹는 음식도 조심하고 종합비타민 같은 것도 챙겨 먹고 있어요. 피곤하면 안 되니 체력 관리에 유념하려고 하는데 운동은 잘 안 하게 되네요. 제가 하도 양치기 소년처럼 운동하겠다고 말만 하고 밖에 나가질 않으니 이영자는 "언니, 제발 운동 좀 열심히 해. 그러다 큰일 나"라며 못난 언니를 걱정해줘요. 주말이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오늘 이 멋진 장소를 알았으니 운동 삼아 걸어와야겠어요.

삶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지셨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아파본 놈이 아파본 놈 마음을 알겠더라고요.(웃음) 예전에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진심을 다해 위로를 못 해드렸는데 제가 그 상황이 돼보니 어떤 심정인지 알겠더라고요. 수술실에 들어갈 때 문득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름답고 향기 나는 사람이 돼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겠노라 다짐했어요. 지금 멀쩡히 숨 쉬고 있으니 제가 뱉은 말을 실천하며 살아가야겠죠.

힘들게 정착한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그곳에서 보낸 7년간의 생활은 시간이 멈춰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할 만큼 여유로웠어요. 특히 자연과 함께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었죠. 그런데 항상 아빠를 찾던 아이들이 시간이 흐르자 아빠의 존재에 대해 무감각해지더군요. '이래서는 아이들 교육이 안 되겠다' 싶어 심각하게 고민할 때쯤 한국에서 연예인들의 자살 사고가 잇달았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후배들이 전화해 "언니, 너무 외롭고 무서워.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데 저도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 녀석들이 혹시 이상한 생각을 하면 어쩌나' 하고 말이죠. 우리 가족의 평화를 되찾고 후배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한국에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후배들의 카운슬러로 유명하세요.

지난 4년 동안 연예인 연합 예배 모임을 하고 있어요. 2백50여 명의 연예계 종사자가 참석하는데 사실 별다른 건 없어요. 다 같이 모이면 일단 맛있는 밥을 먹고 서로 마음 편히 웃고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죠.

인기를 업으로 살아가는 연예인이니 힘들어하는 동료가 많을 것 같아요.

불규칙적인 생활과 매일 쫓기듯 살다 보니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 동료가 많아요. 전혀 안면이 없는 후배들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합니다. 막상 통화를 하면 어떤 거창한 말보다 "힘들어 보인다. 힘내렴" 정도의 말을 건네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후배들이 전화해 감사 인사를 하죠. 저는 선배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조금이라도 인생을 더 산 어른으로서 후배들에게 할 수 있는 일 아닐까요?

예전에는 가족이 모여도 지금처럼 행복하지 않으셨다면서요?

네. 특히 큰아들과 부침이 심했습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욕쟁이였어요. 오래전 방송을 할 때 한 선배가 "네가 앞으로 대성하려면 욕을 배워야 한다"면서 욕을 가르쳐줬죠. 그렇게 욕이 입에 배고 나니 욕을 하지 않고서는 입을 뗄 수 없었어요. 심지어 제 자식들에게도 말이죠. 캐나다 이민을 가서 처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런 분풀이를 큰아들 은기에게 했습니다. '내 자식한테 욕하는데 누가 뭐래?'라며 더욱 당당히 욕을 했어요. '미친놈, 쓰레기 같은 놈, 놈놈놈.' 지금 생각해보면 싸움의 시비는 늘 제가 걸었던 것 같네요.

관계 개선은 어떻게 하셨어요?

남편과 전화로 다툰 뒤 거실에 나오니 아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어 바로 욕을 퍼붓기 시작했죠. 그러고 나서 손찌검을 하려는 제 손을 아들 은기가 붙잡았는데 저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느꼈어요.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해 더 악을 쓰며 발길질을 했죠. 그때 은기가 그러더군요. "연예인이라는 인간이, 교회 집사라는 인간이! 사람들이 이러는 거 알아? 바깥에선 그렇게 잘하고 안에서는 이러는 거 누가 아냐고? 엄마 이러는 거 어디 가서 말을 못 해 내가 쪽팔려서 진짜!" 순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움찔했어요. '이 아이가 나를 다 알고 있구나. 정말 다 컸구나' 하고 말이죠. 그 뒤로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다신 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큰아들에게 고마웠을 것 같습니다.

욕을 끊고 나니 아들이 오히려 "엄마! 왜 욕 안 하세요?"라며 금단 현상을 느끼더군요.(웃음) 그렇게 공부하라고 말해도 전혀 관심 없던 녀석인데 방에 앉아 공부를 하더라고요. 둘째 은비는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며 "엄마, 큰일났어! 오빠가 공부를 해!"라고 제보(?)했던 적도 있었죠. 지금은 캐나다에서 신학대학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 중입니다.

다른 두 딸과는 마찰이 심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은기가 26살이고 은비와 은별이는 18살, 14살이니 터울이 제법 있죠. 두 딸을 키울 때는 첫째와 전쟁을 치를 때처럼 정신 나간 아줌마(?)는 아니니 사랑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딸에게도 항상 "오빠한테 잘해라. 오빠 덕분에 너희는 편하게 살고 있는 거야"라고 얘기하죠. 사실 이번 책 제목 <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 는 은기를 보며 느꼈던 제 마음입니다.

세 자녀가 어떻게 자라줬으면 하는지요?

건전한 정신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각자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있으면 저는 두말하지 않고 하라고 합니다. 은기는 신학대학을 다니니 어느 정도 진로가 정해진 편인데도 "인생을 목사처럼 반듯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니 너무 부담 갖지 말라"라고 얘기해요. 은비는 미적 감각이 뛰어난 편인데 따로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섣불리 디자이너로 진로를 정하기 두려워해요. 그때도 전 "예술가는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줬어요. 은별이는 빵에 관심이 많아 열심히 빵을 굽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는 대학을 가지 않고 빵을 만들겠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어요. "나이 들어 대학을 가고 싶다면 그만큼 공부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줬더니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부모 입장으로서 욕심도 많을 텐데요.

욕심이 있다고 해서 부모의 바람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네요. 제 좌우명은 '부딪히고 깨져도 끝까지 간다'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했다가 틀리기도 하고 부딪혀도 봐야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다음에 똑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노하우가 생긴다고 봐요. 스무 살 성인이 되면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지 않는 것도 스스로 개척하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탈북 청소년들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죠?

우리 청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들로 단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죄밖에 없잖아요. 현재 우리나라에 사는 탈북 청소년들은 중·고등학교 때까진 보호를 받다가 성인이 되면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해요. 정작 멘토링이 필요할 때 곁에 아무도 없는 거죠. 저는 북한 출신의 아들과 딸을 각각 한 명씩 후원하고 있어요. 지난 어버이날에도 "어머니가 제 옆에 계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문자가 왔는데 가슴이 뭉클했어요. 현재 북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 아이템을 기획 중입니다. 언제, 어디서 방송될지 모르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새터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단순하게 '하루 잘 살기'입니다. 한 번 아픔을 겪고 나니 시간과 사람의 소중함을 알겠더군요. 지금은 건강을 축내면서까지 일하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어요. 누구를 만나도 가슴으로 안아줄 수 있는 풍요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우먼센스 >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가족 모두가 천 년 만 년 함께할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제 막내딸은 "엄마 일찍 죽어? 친구들이 엄마 나이가 많아 일찍 죽을 거래"라며 걱정합니다. "엄마가 오래 살게 해주세요"라고 밤마다 울며 기도하는데 참…. 아이들과 사랑의 기억을 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제 욕심을 부리지 않는 편이죠. 다른 부모들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언인지 귀를 기울이고 "네가 그 일을 하며 행복하면 되는 거야"라며 아이의 기를 살려주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는 멋진 아이로 자라날 겁니다. 사랑을 받아본 아이들이 자라서 사랑을 주는 어른이 되는 거니까요.

취재_이충섭 객원기자 | 사진_이상윤 | 촬영협조_CNN카페(02-595-8674)

 

 

 

http://media.daum.net/life/living/tips/newsview?newsId=20140828090007257&RIGHT_LIFE=R9

 

(원문발췌 : 다음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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